고구려왕의 계보를 배워봅시다!

고구려왕의 계보를 배워봅시다!

고구려왕의 계보를 배워봅시다! 1

우리가 학생 때 역사 공부를 할 때 항상 빠짐없이 고구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고구려는 이름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는 조선 다음으로 가장 친숙한 나라의 이름이에요.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운 고구려에 대해서 여러분은 지금 얼마나 기억하고 계신가요? 고구려는 사실 한반도 역사에서 전성기를 맞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나라보다 정복으로도 유명한 나라였던 만큼 고구려는 여러 외세의 침입을 막고 침략으로 나라를 크게 만드는 등의 활약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고구려 왕의 계보를 잘 알고 계신가요? 조선 왕의 계보는 잘 알지만 고구려 왕의 계보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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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에는 유명한 왕이 많답니다.

어쩌면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을 가장 먼저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고구려에서 가장 유명한 정복왕이었던 광개토대왕과 그의 아들 장수왕을 떠올리기 쉬울 겁니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왕들을 생각해 내려고 하면 아마 대부분은 아무도 생각나지 않고 어느 왕이 있을지 궁금해 하실 것입니다.

먼저 고구려를 살펴보면,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건국된 나라입니다.

건국연도가 이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에는 이때 건국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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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지만 역사학계에서는 고구려가 실제로 건국된 시기에 대해 알려진 100-200년 정도 일찍 건국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근거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고구려보다 먼저 건국된 나라인 신라가 후진국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과 추모왕의 12대손이 광개토대왕이라는 기록 때문이라고 해요.

광개토대왕비에 실제 추모왕의 17대손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에 비해 고구려는 실제 알려진 것보다 최대 200년 저도 먼저 건국되었다는 주장이 나온 것입니다.

고구려 건국 당시에는 수도가 지금의 중국 요녕성 환런시의 졸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아들인 유리왕 제위기간에 위라암성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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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고구려왕의 계보를 이어서 차근차근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잘아는조선왕과달리고구려왕의계보는잘모르니아래참고하시기바랍니다.

동명성왕-유리왕-대무친왕-민주왕-모본왕-태조대왕-차대왕-신대왕-신상왕-동천왕-중천왕-봉상왕-미천왕-고국원왕-소이림왕-고국양왕-장수왕-문자명왕-안원왕-평원왕

이렇게 고구려는 동명성왕부터 시작해서 보장왕까지 총 28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위의 왕들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긴 왕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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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 주몽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고구려의 시조라는 특성 때문인지 하나의 설화가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주몽은 부여 출신인데 처음에는 성씨가 고씨가 아니었는데 고구려를 건국한 후에 성을 고씨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고구려가 중국과 부여 등 주변국과 많은 분쟁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정벌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주몽의 손자이자 유리왕의 아들인 대무신왕 때에 이르러 부여의 대소왕을 죽이고 부여를 정벌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무신왕이 주몽의 손자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사실 여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위서』의 고구려전에는 대무신왕이 유리왕의 손자라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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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미천왕이 있는데 미천왕은 고구려 영토를 고조선에까지 확장한 왕이에요. 하지만 선비족의 나라인 청용이라는 나라의 치욕을 당하고 수모를 당했다고 해요.

그리고 미천왕의 아들 대에 이르러 고국원왕 때에는 백제 근초고왕이 이끌고 온 군대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멸망 직전까지 이어진 고구려의 힘을 다시 키운 왕이 있었는데, 그는 고국원왕 다음으로 왕위에 오른 소수림왕이에요.

그는 태학이라고 하는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을 만들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문치주의를 세웠다고 해요. 또 나라를 더욱 안정시키기 위해 불교 공인에도 힘을 쏟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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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림왕이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여 기틀을 다졌기 때문입니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대에 이르러서는 정복으로 나라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의 왕이었던 보장왕은 당시 고구려에서 마지막 실력자로 불렸던 연개소문이 반란을 일으켜 왕좌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힘이 없이 뒤에 연개소문에 의해 좌지우지된 왕이라는 해석이 지금까지 내려오는데요, 그의 평가는 고구려 멸망 이후 달라졌습니다.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부흥에 업적을 남겼으므로 왕다운 역할을 했다는 평가로 바뀌었습니다.